평양 동무에게 -북에 외국계 법률사무소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에 접하여

2004-09-23     김진원
북에 동무하기로 한 친구가 하나 있다. 3년전 금강산에서 개최된 6.15 공동선언 1주년기념 남북민간공동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다. 금강산여관 앞마당, 여름 뙤약볕 아래 객석에서 그는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남쪽의 변호사라고 소개했고, 그는 자신을 조선민주법률가협회 국제비서라고 소개했다.

법률가라는 말에 궁금한 게 갑자기 너무 많이 떠올랐다. 토론회 중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

북에도 변호사가 있는지, 몇 명이나 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대학에 법학과도 있는지, 법학과가 인기는 있는지, 변호사되는 과정이 어떤지, 시험을 보는지 안보는지 등등.

때로 내가 생각하기에도 물으나마나한 당연한 질문도 있었지만, 그는 이것저것 안가리고 성실히 답해줬다.

나이를 물었더니 마침 동갑이었다. 반가운 김에 동무하자 했더니 떨떠름한 표정이다가 이내 그러자고 답한다.

이렇게 그는 내게 평양동무가 되었고, 나는 그에게 서울친구가 되었다.

다음날 또 만났다. 금강산을 오르는 길이었다. 나란히 산을 오르며 어디에 사는지, 결혼은 했는지, 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애는 있는지, 몇 살인지, 이름이 뭔지 등등. 이날도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물어봤다.

딸이 하나라며, 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얼굴에 기쁜색이 완연했다. 금강산 바위계곡을 내려오면서는, 그가 어릴적 아동단 활동으로 금강산에 왔다가 밤에 동무들 몇이서 숙소를 몰래 빠져 나와 물흐르는 바위에서 발가벗고 미끄럼타고 놀았던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가져간 사과를 맨손으로 쪼개 나눠 먹었고, 도시락도 나눠 먹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온정각 옆에 위치한 김정숙휴양소의 운동장에서 헤어진 뒤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 후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혹여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국제법 서적 2권을 그에게 줄 선물로 가져갔지만, 그 책은 임자를 만나지 못해 내 서가에 그냥 꽂혀 있다.

“여자애를 싸움꾼으로 만들일 있냐”는 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었다는 딸아이의 이름이 ‘솔매’이던가 그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진다.

평양외국어대학을 졸업한 뒤 조선민주법률가협회에서 국제업무를 담당한다는 그, 대일배상청구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금도 평양에 살고 있을게다.

그에게 제의한 게 하나 있고, 스스로 욕심낸 게 또 하나 있었다.

남북 법률가 교류를 해보자며, 내가 속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주소도 주었고 전화ㆍ팩스 등 연락처도 주었다.

그러나 그 답을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 남한의 다른 여러 곳에서도 법률가 교류를 희망해 왔으나 마찬가지로 성사된 것은 없다고 알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 후 남북관계가 날로 발전해 가고 있다. 정치ㆍ경제ㆍ군사ㆍ문화ㆍ사회ㆍ체육ㆍ학술 등 다방면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날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동해에서의 금강산관광이 육로로까지 발전했고, 서해에서는 개성공단 건설이 한창이다.

그럼에도 아직 남북 법률가들의 교류는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변호사로서, 남북관계에 관심을 가진 이래 북에 법률사무소나 그 분소를 내는 게 또다른 하나의 욕심이었다.

물론 이건 그에게 이야기한 적 없고 내 마음속에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 9월초 영국계 법률회사가 북한정부와 합작으로 평양에 법률사무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이칼브앤드어소시에이트(Hay, Kalb & Associate)사의 마이클헤이 대표변호사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12명의 직원과 함께 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김일성광장 부근에 사무소를 열었다는 것이다.

북한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에 법률ㆍ투자ㆍ회계 정보를 제공하는 등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먼저 떠오른 것이 그의 얼굴이었지만, 한편으론 이제 시작되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나도 대북사업하는 몇몇 업체를 법률자문해 왔고 함께 평양에서 베이징에서 계약서를 검토ㆍ작성해 보았지만, 북은 아직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이해부터 많이 뒤쳐져 있다는 느낌을 받곤했다.

글로 배우는 것과 생활로 체감하는 것의 차이는 적은 게 아닐 것이다.

어쨌든 북이 남한에 대하여만이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자본주의 경제권과의 교류ㆍ무역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그 과정에 북에 투자하거나 진출하려는 외국투자자나 외국기업인들의 입장에서는 생소한 게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북의 법제도와 운용실태도 그러하고 가능성있는 사업분야가 무엇인지, 수익성이 있는지 등의 정보도 부족할 것이다.

북에 대한 여러 가지 법률정보와 컨설팅이 요긴한 상황인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도 투자자나 기업에 대한 평가ㆍ실사에서부터 자본주의적 교류, 무역에 관한 법제도, 협상기술 등 마찬가지의 필요가 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남북 간에도 경제적 교역과 협력사업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여타 분야의 사회ㆍ문화적 교류ㆍ협력도 더욱 다양해지고 심화될 것이다.

그 과정에 양 당자사 모두에게 법률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될 것은 틀림없다.

그 외, 당장에도 북의 저작권이 남한에서 침해되고 있는 사례가 수천건, 수만건에 달하는 실정이며, 수백만 이산가족의 상속ㆍ유증의 문제만해도 하나둘이 아니요 간단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북과의 관계에서, 법률가와 법률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이미 생겨있는 것이고 앞으로 더욱 늘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같은 민족성원이 아닌 외국계 로펌이어 아쉬움도 있지만, 북에 외국계 법률사무소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매우 환영하며 큰 기대를 표한다.

언젠가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낮선 외계에 간 것처럼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질문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그가 내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를 오래도록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혹여, 함께 법률사무소를 내고 평양에서 같이 근무하게 될지도…
◇김승교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사법연수원 28기)했으며, 현재 법무법인 정평(正平)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한성대 부동산대학원 외래교수를 겸하고 있으며, 대한변협 통일문제연구위원회 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이기도 합니다.

김승교 변호사(법무법인 정평 · jinksg@jnplaw.com)